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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40년 The moment] 선동열·김성한 없는 해태의 V8...현대 왕조 서막

한국 프로야구가 올해로 출범 40주년을 맞이했다. 1969년 창간한 일간스포츠는 1982년 프로야구 태동을 현장에서 지켜본 국내 유일의 스포츠 전문지다. 강산이 네 번 바뀌는 동안 한해도 빠짐없이 프로야구의 성장과 변화 과정을 기록했다. 이 기간 여러 구단의 희비가 엇갈렸고 수많은 별이 뜨고 졌다. 일간스포츠는 프로야구 원년부터 지난 시즌까지 KBO리그 역사를 사진으로 독자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한다. ①'리틀 쿠바' 박재홍 등장 현대 신인 박재홍이 프로야구를 뒤흔들었다. 데뷔 시즌 126경기에 출전, 타율 0.295 30홈런 108타점 36도루를 기록했다. 그는 9월 3일 LG전에서 김용수를 상대로 좌월 홈런을 때려내며 역대 최초로 30홈런-30도루 클럽에 가입했다. 그해 홈런왕과 타점왕에 올랐다. 박재홍이 데뷔 시즌 최다 홈런과 타점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았다. 만장일치(유효 30표)로 신인왕을 수상했다. ②김성근의 쌍방울, 반전 2위 쌍방울은 정규시즌 2위(70승 2무 54패)에 오르며 1군 진입 6시즌 만에 가을야구에 나섰다. 새로 지휘봉을 잡은 김성근 감독은 김현욱·조규제·오봉옥을 앞세워 중간 계투진을 강화, 1점을 짜내고 지키는 야구로 쌍방울의 상위권 도약을 이끌었다. 간판타자 김기태의 성적은 이전 시즌보다 떨어졌지만, 김광림(타율 0.303)이 분전했다. 연고지 전주엔 야구 열풍이 불었고, 쌍방울은 창단 뒤 가장 많은 홈 관중(26만 5918명)을 기록했다. ③현대, 창단 첫 시즌 'KS 진출' 현대는 창단 첫 시즌 돌풍을 일으켰다. 1995시즌 7위였던 태평양을 인수한 만큼 기대가 크지 않았으나, 정규시즌 4위에 올랐다. 포스트시즌에선 한화와 쌍방울을 차례로 꺾고 한국시리즈(KS)까지 진출했다. 정민태·정명원·위재영이 지키는 현대 마운드는 꽤 높았다. 김경기·이숭용·박재홍이 이끄는 타선의 짜임새, 신인 박진만이 지키는 내야도 탄탄했다. 선수 시절 '그라운드의 여우'로 불렸던 김재박 감독은 현대 왕조의 서막을 알렸다. ④'이빨 빠진 호랑이'의 우승 개막 전 해태를 향한 전망은 밝지 않았다. 선동열이 일본 무대로 진출했고, 김성한이 은퇴했기 때문이다. 시범경기에서 해태는 1승 1무 4패에 그쳤다. 그러나 이종범과 이대진, 투·타 핵심 선수들이 군 복무를 마치고 복귀한 6월 이후 상승세를 탔다. 7월에는 15승(1무 5패)을 챙기며 1위로 올라섰다. 이후 선두를 내주지 않고 1위로 정규시즌을 마쳤다. 조계현은 시즌 최다 완투(11번)를 해냈다. 해태는 현대와 맞붙은 KS에서도 4승(2패)을 먼저 거두며 통산 8번째 KS 우승을 차지했다. KS 진출 시 우승 확률 100% 기록도 이어갔다. ⑤정명원, 최초 KS 노히트노런 현대 정명원은 10월 20일 열린 해태와의 KS 4차전에 선발 등판, 9이닝 동안 피안타 없이 2볼넷 1사구 9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하며 노히트노런을 해냈다. 앞선 15시즌(1982~1996) 동안 노히트노런 8번은 모두 정규시즌 경기에서 나왔다. 이후에도 포스트시즌에서 노히트노런을 해낸 투수는 없었다. 마무리 투수였던 정명원을 선발로 내세운 김재박 당시 현대 감독의 '변칙' 용병술도 빛났다. ⑥투수 4관왕 구대성, MVP 한화 구대성은 1996년 정규시즌에서 18승 3패 24세이브(40세이브포인트) 평균자책점 1.88을 기록했다. 시즌 초반에는 마무리 투수를 맡았지만, 5월 11일 삼성전을 기점으로 선발 투수로도 나섰다. 다승과 구원, 평균자책점과 승률(0.857) 1위에 오른 그는 신인 박재홍의 돌풍을 잠재우며 최우수선수(MVP)에 뽑혔다. ⑦이강철, KS MVP 수상 해태 이강철은 데뷔 첫 시즌(1989년)부터 15승을 거뒀지만, 팀 선배 선동열과 조계현에 가려 있었다. 그는 1996년 KS에서 완봉승을 포함해 2승 1세이브 13탈삼진 평균자책점 0.56을 기록하며 시리즈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처음으로 주인공이 된 것이다. 이강철은 1996년을 돌아보며 "당시 KS MVP는 정규시즌 MVP만큼 영광스러운 타이틀이었다. 서로 등판하고 싶어서 경쟁했다. 의미가 큰 수상"이라고 돌아봤다. ⑧'불사조' 박철순 은퇴 프로야구 원년 흥행을 이끌었던 스타 박철순이 10월 4일 선수 생활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1982년 24승 4패 7세이브 평균자책점 1.84를 기록하며 MVP에 올랐다. 지난 시즌까지 깨지지 않은 '단일 시즌 최다 연승' 기록(22연승)도 그해 세웠다. 그는 허리, 아킬레스건 등 끊임없이 이어진 부상 속에 신음하면서도 우리 나이로 마흔한 살까지 마운드를 지켰다. 통산 성적은 231경기 76승 53패 20세이브 평균자책점 2.95. 야구팬은 그에게 '불사조'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안희수 기자 사진=IS포토·한국프로야구 30년사 2022.12.2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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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40주년 레전드 마지막 4인으로 '송진우·구대성·김용수·임창용' 발표

KBO(한국야구위원회)가 KBO리그 40주년을 기념해 선정한 ‘레전드 40인’의 마지막 주인공으로 선발과 마무리를 넘나들며 활약한 송진우, 구대성, 김용수, 임창용이다. 송진우는 이글스에서 21시즌을 뛰면서 수많은 불멸의 기록을 작성한 명실상부한 레전드다. 1988년 빙그레의 1차 지명을 받았지만 1988 서울올림픽 출전을 위해 KBO 리그 진출을 미뤘을 정도로 대학 최고의 투수였다. 신인 시절부터 팀의 상황에 따라 선발과 마무리를 오가며 던졌고, 1992시즌에는 19승과 25세이브 포인트(8구원승+17세이브)를 기록하며 KBO 리그 최초로 승리와 구원 부문 타이틀을 동시에 차지하는 역사를 썼다. 1994시즌까지 66승과 82세이브를 기록했던 송진우는 2005시즌까지 8번의 두 자릿수 승리 시즌을 기록했다. 특히 1999시즌에는 15승에 6세이브까지 거두며 한화의 첫 우승을 이끌었고, 이듬해인 2000시즌에는 해태를 상대로 3개의 사사구만을 허용하며 KBO 리그 10번째 노히트노런을 기록했다. 당시 송진우의 나이는 34세 3개월 2일, 이는 아직까지 역대 최고령 노히트노런 기록으로 남아있다. 최고령 선발승, 구원승, 완투승, 완봉승, 홀드, 등판 등 투수 관련 각종 최고령 기록을 보유한 송진우는 KBO 리그에서 가장 많은 타자(12,708명)를 상대했고, 가장 많은 이닝(3,003이닝)을 투구했으며, 또 가장 많이 이기고 졌다(210승, 153패). 송진우는 전문가 투표에서 150표(76.92점), 팬 투표에서 441,630표(8.09점)를 얻어 총 점수 85.01로 레전드 5위에 자리했다. ‘대성불패’ 구대성은 선발과 마무리는 물론, 결정적 승부처 위주로 경기에 등판하는 전천후 투수로 활약했다. 커리어하이 시즌을 보낸 1996시즌에는 주로 마무리로 등판하면서도 18승 3패 24세이브, 평균자책점 1.88의 성적을 거둬 승리와 평균자책점, 승률 부문 타이틀을 차지하는 등 믿기 어려운 시즌을 보내며 시즌 MVP(최우수선수)를 차지했다. 한화의 유일한 우승 시즌인 1999시즌에는 정규시즌에서 55경기에 등판, 8승 9패 26세이브를 거두며 팀을 한국시리즈로 이끌었고, 한국시리즈에서도 5경기에 모두 등판해 1승 1패 3세이브를 기록, 팀의 유일한 한국시리즈 MVP로 남아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 결정전에서 일본을 상대로 선발 등판한 구대성은 155구를 던지며 완투승을 기록했다. 한국 야구에 첫 올림픽 메달을 안겨준 이 경기는 한국 야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역투 중 하나로 꼽힌다. 구대성은 전문가 투표에서 141표(72.31점), 팬 투표에서 493,913표(9.04점)를 얻어 총 점수 81.35로 레전드 순위 8위에 자리했다. 김용수는 소나무처럼 한결같이 팀을 지켜온 모습으로 ‘노송’이라는 별명을 갖게 된 LG 프랜차이즈 스타 투수다. KBO리그 최초 투수 500경기, 600경기 출장을 오로지 한 팀 유니폼만 입고 달성했다. 커리어 말미까지도 호투해 역대 최고령 다승왕을 달성했고 최고령 1,000탈삼진도 기록했다. 김용수의 커리어를 축약해 보여주는 대표적인 기록은 KBO 리그 역대 최초이자 단 둘뿐인 100승-200세이브다. 김용수는 LG가 우승을 차지한 1990시즌에는 선발투수로 2승, 1994시즌에는 마무리 투수로 1승 2세이브를 기록하며 LG의 두 차례 한국시리즈 우승 때 모두 MVP를 차지해 LG의 유일한 한국시리즈 MVP로 남아있다. 김용수는 팀에 헌신한 노고를 인정받아 1999시즌 리그 최초로 현역 생활 중 영구결번 선수가 됐다. LG의 첫 영구결번 선수 김용수는 전문가 투표에서 116표(59.49점,) 팬 투표에서 537,467표(9.84점)를 획득, 총 점수 69.33을 기록해 16위에 올랐다. 임창용은 사이드암 투수로 시속 150km를 뛰어넘는 빠른 패스트볼을 앞세워 KBO 리그 통산 760경기에 출장해 130승 86패, 258세이브, 평균자책점 3.45를 기록했다. 임창용은 전문가 투표에서 112표(57.44점), 팬 투표 468,798표(8.58점), 총 점수 66.02로 21위에 자리했다. 임창용은 지난 7월 말 상습도박 혐의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았다. ‘레전드 40인 선정’과 관련, 논란이 있을 수 있으나 이미 팬 투표와 전문가 평가가 완료된 이후였으며, 선수의 굴곡 또한 야구 역사의 일부이기에 순위와 평가를 기록으로 남기기로 했다. 김용수에 대한 시상은 10월 3일 잠실 KIA와 LG의 경기에서 열릴 예정이며, 그 외 선수에 대한 시상 일정은 미정이다. KBO는 근소한 투표수 차이로 아깝게 레전드 40인에 선정되진 못했지만, KBO 리그에서 큰 활약을 펼치고 추억을 선사한 41위~50위 선수들도 추후 공개할 예정이다. 차승윤 기자 chasy99@edaily.co.kr 2022.09.19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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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40주년 레전드 4인의 에이스 발표...'이강철·정민철·정민태·조계현'

한국야구위원회(KBO)가 20세기를 대표했던 에이스 투수 4인이 프로야구 40주년 레전드에 선정됐다고 발표했다. KBO는 15일 선발 투수로 화려한 기록을 남긴 이강철 KT 위즈 감독, 정민철 한화 이글스 단장, 정민태 전 한화 투수 코치, 조계현 전 KIA 타이거즈 전 단장이 프로야구 40주년 레전드 40인에 선정됐다고 발표했다. 선수 시절 ‘핵잠수함’으로 불리던 이강철 감독은 데뷔 첫해인 1989시즌부터 강인한 인상을 남겼다. 10승과 100탈삼진을 모두 넘어섰다. 이후 1998시즌까지 10시즌 동안 매 시즌 10승과 100탈삼진 이상을 기록, KBO리그 역대 최다인 10시즌 연속 10승 및 세 자릿수 탈삼진이라는 대기록을 모두 달성한 유일한 투수로 이름을 남겼다. 이름에서 딴 ‘아이언맨’이라는 별명에 걸맞는 성적이었다. 큰 무대에서도 강했다. 이 감독은 1996시즌 한국시리즈에서 현대 유니콘스를 상대로 총 6차전까지 갔던 명승부 중 무려 5경기에 등판했다. 그해 완봉승 1번을 포함한 2승 1세이브 16이닝 13탈삼진 평균자책점 0.56이라는 화려한 성적을 남겼고, 한국시리즈 MVP(최우수선수)로 선정됐다. 그는 2005시즌까지 16년간 총 한국시리즈 5번 우승, KBO리그 통산 승리 4위(152승), 투구이닝 3위(2204 2/3이닝), 탈삼진 3위(1751탈삼진) 등 굵직한 기록을 남긴 후에야 마운드를 떠났다. KBO리그 40주년 레전드 투표에서는 전문가 투표 141표(72.31점), 팬 투표에서 446,940표(8.18점)을 획득해 총 점수 80.49점으로 레전드 9위로 선정됐다. ‘이글스의 영원한 에이스’ 정민철 단장은 KBO리그의 ‘황금세대’로 꼽히는 92학번(또는 입단) 스타들 중 한 명으로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고졸 신인으로 빙그레에 입단한 1992시즌부터 33경기에 등판해 완투 11회, 완봉 3회를 포함, 14승 4패 7세이브 145탈삼진의 출중한 성적으로 롯데 고졸 신인 염종석과 경쟁했다. 정민철 단장은 90년대 완투의 상징이기도 했다. KBO리그 역대 2번째로 많은 20번의 완봉승과 49완투승(공동 6위)을 기록했다. 매 경기 많은 이닝을 책임졌던 정 단장은 통산 투구이닝 2394 2/3으로 이 부문 역대 2위에 자리하고 있다. 다승에서도 데뷔 첫해부터 6번째 시즌이었던 1997시즌까지 매 시즌 13승 이상씩을 쌓아 올리며 같은 해 KBO리그 역대 최연소 100승(27세 3개월 2일) 신기록을 세웠다. 해당 기록은 2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1992시즌부터 1999시즌까지 8시즌 연속 10승 기록을 이어갔는데, 이는 고졸 신인 데뷔 이후 최다 연속 시즌 10승 이상 기록이다. 통산 승수에서도 161승으로 승리 부문 2위에 자리하고 있다. 정민철 단장은 전문가 투표 135표(69.23점), 팬 투표 314,531표(5.76점)로 합산 74.99로 13위에 올랐다. ‘20세기 마지막 20승 투수’, 정민태 전 코치도 레전드로 선정됐다. 대학 시절부터 명성을 떨친 에이스답게 정민태 코치는 규정이닝을 채운 1994시즌부터 재능을 꽃 피우기 시작했다. 1996시즌부터 2000시즌까지는 무려 5시즌 연속 200이닝 이상을 투구했다. 해당 기록은 KBO리그 역사상 최동원(롯데 자이언츠) 전 감독과 정민태 코치만이 달성한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정민태 코치가 달성한 또 하나의 유일무이한 기록이 있다. KBO리그 역대 선발 최다 연승 기록이다. 그는 2000년 7월 30일 수원 두산 경기부터 2003년 8월 31일 수원 두산 DH2차전까지 무려 3년이 넘는 기간 동안 패배 없이 선발로만 21연승을 이어가며 ‘불패’의 아이콘으로 거듭났다. 현대 왕조의 에이스로도 활약, 선발 마운드를 이끌며 총 4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투수 개인 부문에서도 승리 1위(99, 00, 03년), 승률 1위(03년), 골든글러브 투수상(98, 99, 03년), 한국시리즈 MVP(98, 03년) 등 화려한 수상 경력도 보유하고 있다. 정민철 단장과 정민태 전 코치 두 레전드는 나란히 KBO리그에서 정점을 찍고 일본 무대로 진출해 요미우리에서 한솥밥을 먹기도 했다. 정 코치는 전문가 투표 112표(57.44점), 팬 투표 558,914표(10.23점)로 총점 67.67점으로 18위에 올랐다. 조계현 전 단장은 데뷔 초기 ‘싸움닭’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물러서지 않는 공격적인 투구를 했지만, 이후 ‘팔색조’라는 별명을 얻을만큼 다양한 변화구를 능숙하게 던지는 기교파의 모습을 보이며 KBO 리그를 호령했다.그의 커리어하이 시즌은 1994시즌으로, 18승으로 다승 부문 공동 1위에 올랐고 리그에서 가장 많은 14번의 완투를 기록하는 극강의 모습을 보였다. 타자와의 싸움에서 절대 물러서지 않았던 조계현은 개인 통산 20완봉, 64완투로 각각 역대 4위, 공동 8위에 위치해 있다. 조 전 단장은 진기록도 보유하고 있다. 1993년 8월 29일 광주 쌍방울전에서는 9이닝 10탈삼진 완투승을 거두며 KBO리그에서 지금까지 23번밖에 달성되지 않은 매회 탈삼진 진기록도 세웠다. 조 전 단장은 이강철 감독과 함께 해태 왕조의 선발 한 축을 담당했고, 선수 생활 마지막 해에도 두산에서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조계현 전 단장은 전문가 투표 102표(52.31점), 팬 투표 342,254표(6.27점) 합산 58.57점으로 26위에 자리했다. 조계현 전 단장에 대한 시상은 오는 8월 19일 광주 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리는 NC 다이노스와 KIA 경기에서, 현역 KT 감독인 이강철 감독의 시상은 20일 수원 KT위즈파크에서 열리는 KIA와 KT의 수원 경기에서 이루어질 예정이다. 정민철 단장과 정민태 전 코치의 시상 일정은 미정이다. 차승윤 기자 chasy99@edaily.co.kr 2022.08.1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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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 올스타] KBO 40주년 올스타 TOP4 발표...선동열, 별 중의 별로 선정

KBO리그의 역사를 대표하는 40주년 올스타 최고의 4인이 발표됐다. KBO(한국야구위원회)가 16일 리그 40주년을 기념해 선정한 레전드 40인 중 TOP 4, 최다 득표 레전드 4명을 올스타전 경기 전 공식행사를 통해 발표했다. 선정위원회에서 추천한 177명의 후보 가운데 전문가 투표(80%)와 팬 투표(20%) 결과를 합산해 선정한 40인의 레전드 중 가장 많은 표를 얻은 4명의 레전드는 선동열(해태 타이거즈), 최동원(롯데 자이언츠), 이종범(KIA 타이거즈), 이승엽(삼성 라이온즈)이다(이상 득표 순). 최다 득표 1위를 차지한 선동열은 현역시절 ‘무등산 폭격기’라는 별명을 가졌던 명실상부한 국보급 투수다. 1985시즌 해태에서 데뷔한 이래, 1996시즌 일본 주니치 드래곤즈로 이적하기 전까지 해태에서만 11시즌을 보내면서 해태 왕조 건설의 선봉에 섰다. 이 기간 동안 해태는 여섯번(86~89, 91, 93)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커리어 막판 마무리 투수로 전향하면서 100승과 100세이브를 돌파했고, KBO 리그에서 1,000이닝 이상을 투구한 투수를 기준으로 통산 평균자책점(1.20), 완봉(29), WHIP(0.80)에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선동열은 전문가 투표 156표 중에서 155표(79.49점), 팬 투표 1,092,432표 중 631,489표(11.56점)를 받아 총점 91.05로 1위의 영광을 차지하게 됐다. 선동열은 2011년 선정한 30주년 레전드 올스타 베스트10에도 선정된 바 있다. 최다 득표 2위에 오른 최동원은 ‘무쇠팔’이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팬들에게는 ‘1984년 한국시리즈 4승’으로 각인된다. 별명에 걸맞게 통산 완투 2위(81개), 최다 연속 시즌 200이닝 이상 투구 공동 1위(5시즌)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통산 평균자책점은 선동열에 이어 2위(2.46), 통산 WHIP는 3위(1.15)에 올라있다. 롯데의 우승을 이끌었던 1984시즌이 커리어 하이 시즌으로 해당 시즌에 기록한 27승은 역대 단일 시즌 최다 승리 2위, 223탈삼진은 최다 탈삼진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이 시즌 최동원은 정규시즌 MVP와 투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품에 안았다. 최동원은 전문가 투표에서 156명 전원(80.00점)에게 표를 얻었으며 팬 투표에서 545,431표(9.99점)를 확보, 총점 89.99를 얻었다. ‘야구천재’ 이종범은 별명에 걸맞게 공수주에서 빠지는 것 없는 하나 없는 만능 플레이어였다. 명 유격수로 이름을 날렸던 90년대 4번의 골든글러브(93, 94, 96, 97) 타이틀을 차지했고 일본에서 복귀해서는 외야수로 활약하며 두 차례(02, 03)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정규시즌 MVP를 차지했던 1994년이 이종범의 커리어 하이 시즌으로 시즌 막판까지 4할에 육박하는 타율을 오가며 원년 백인천 이후 첫 4할 타자 탄생을 기대하게 했다. 최종 성적은 타율 0.393으로 역대 단일 시즌 최고 타율 2위에 해당하는 기록. KBO 리그 최초의 200안타 달성도 노렸으나 196안타로 시즌을 마감했고 이는 역대 단일 시즌 최다 안타 4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바람의 아들’이라는 또 다른 별명답게 통산 도루 2위(510개)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1994시즌 기록한 84도루는 현재도 깨지지 않는 역대 단일 시즌 최다 도루 기록으로 남아있다. 이종범은 전문가 투표에서 149표(76.41점), 팬 투표에서 595,140표(10.90점)를 얻어 총점 87.31로 최다 득표 3위에 자리했다. ‘라이언 킹’ 이승엽은 자타가 공인하는 ‘국민 홈런 타자’로, KBO 리그의 대부분의 홈런 관련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통산 홈런 1위(467개), 역대 단일 시즌 최다 홈런 1위(56개 – 03년)를 비롯해 최연소 100홈런(22세 8개월 17일), 최연소·최소경기 200홈런(24세 10개월 3일, 816경기), 최연소·최소경기 300홈런(26세 10개월 4일, 1,075경기), 7시즌 연속 시즌 30홈런 등의 다양한 홈런 관련 기록을 갖고 있다. 이 외에도 이승엽은 통산 타점, 득점, 루타, 장타율, OPS 부문에서 1위 자리를 수성하고 있고 골든글러브를 10회(97~03, 12, 14, 15), 정규시즌 MVP를 5회(97,99, 01~03) 각각 수상해 이 부문 최다 수상 타이틀을 갖고 있기도 하다. 이승엽은 전문가 투표에서 149표(76.41점), 팬 투표에서 553,741표(10.14점)을 획득, 총점 86.55를 얻어 이종범에 이어 근소한 차이로 4위에 올랐다. 한편 이 날 KBO 허구연 총재는 최다 득표 레전드 4명에게 트로피를 수여했다. KBO는 후반기 동안 남은 레전드 36명의 명단을 순차적으로 발표해 나갈 예정이다. 40명 레전드와 관련된 특별한 스토리는 KBO의 공식 발표에 맞춰 네이버 스포츠의 KBO 40주년 특집 페이지 등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 잠실=차승윤 기자 chasy9(@edaily.co.kr 2022.07.16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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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40주년 올스타③]호타준족의 대명사 박재홍

한 번도 어려운 '30홈런-30도루' 클럽에 세 번이나 가입한 선수. '리틀 쿠바' 박재홍(49)이 일간스포츠가 선정한 40주년 올스타 외야수 부문 한 자리에 이름을 올렸다. 세대별 야구인 10명씩 총 40명이 참여한 투표에서 장효조(26표), 양준혁(22표)에서 이어 외야수 중 세 번째로 많은 20표를 얻었다. 박재홍은 역대 외야수 중 세 손가락 안에 포함될 만큼 남다른 경쟁력을 보여줬다. 그는 잘 넘기고, 잘 훔쳤다. 개인 통산 300홈런을 때려낸 거포이면서, 도루를 267번이나 성공한 대도였다. 프로야구 무대에서 통산 300홈런 이상 때려낸 14명 중 200도루 이상 기록한 선수는 박재홍뿐이다. 호타준족(장타력과 빠른 발을 모두 갖춘 선수)의 대명사로 여겨진다. 광주일고 시절 동기였던 김종국 KIA 타이거즈 감독은 "공·수·주에서 가장 완벽한 선수였다. 장타력까지 좋았다. 그야말로 야구 천재"라고 박재홍의 선수 시절을 돌아봤다. 광주제일고 재학 시절 4번 타자·에이스로 활약하며 특급 유망주로 평가받은 박재홍은 1992 신인 드래프트에서 해태 타이거즈(현재 KIA)의 1차 지명을 받았다. 하지만 당시 프로 무대에 바로 뛰어드는 고졸 선수는 드물었다. 박재홍도 연세대 진학을 결정했다. 대학 시절도 꽃길을 걸었다. 한국야구의 황금세대로 여겨지는 '전설의 92학번' 일원이었다. 국제대회에서 맹활약하며 1993년 국제야구연맹 올스타에 뽑혔고, 1995년 대학야구 춘계리그에서는 연세대의 우승을 이끌며 최우수선수상(MVP)·타점왕·도루왕을 거머쥐었다. 박재홍은 야구 선수로는 크지 않은 키(1m76㎝)에도 괴력을 뿜어냈다. 당시 아마야구 최강으로 평가받던 쿠바 선수들에게도 지지 않는다며 '리틀 쿠바'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박재홍은 1996년 현대 유니콘스 유니폼을 입고 프로 무대에 뛰어들었다. 신인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활약을 보여줬다. 5월 5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홈 더블헤더에서 3홈런 8타점을 기록하며 존재감을 알렸고, 이후에도 홈런과 도루를 차곡차곡 쌓았다. '왼발이 배터박스를 벗어난다'라며 부정타격 시비에 휘말리기도 했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7월 16일 한화 이글스전에서 75경기 만에 20홈런-20도루, 9월 3일 LG 트윈스전에서 프로야구 역대 최초로 30홈런-30도루까지 달성했다. 박재홍은 1996시즌 타율 0.295 30홈런 108타점 36도루를 기록했다. 신인 선수가 홈런왕과 타점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그해 남긴 신인 선수 데뷔 시즌 최다 홈런(30개)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박재홍은 만장일치로 신인왕을 차지했고, 외야수 골든글러브도 수상자로도 선정됐다. 투수 4관왕에 오른 한화 구대성과의 MVP 경쟁에서는 한 발 밀렸지만, 타자 중에서는 독보적인 퍼포먼스를 남겼다. 박재홍은 누구보다 강렬한 데뷔 시즌을 보냈다. 현재 20대 젊은 후배들이 그를 역대 최고의 외야수로 꼽은 이유다. 2021년 도루왕 김혜성은 "신인 선수가 해낸 30홈런-30도루 기록이기에 임팩트가 컸다"라고 했다. 2021년 신인왕 이의리는 "'호타준족'이라는 단어를 내가 인식할 수 있게 해주신 선배님"이라고 말했다. 박재홍은 1997시즌 허리 부상 탓에 96경기밖에 뛰지 못하고도 27홈런을 때려냈다. 이 부문 리그 4위에 올랐다. 1998시즌은 30홈런 43도루 기록하며 커리어 두 번째 30홈런-30도루를 해냈다. 그해 소속팀 현대의 창단 첫 통합 우승까지 이끌었다. 이후에도 승승장구했다. 데뷔 4년 차(199시즌)에 억대 연봉(1억원)을 받은 선수로 이름을 올리며 가치를 인정받았다. 2000시즌은 개인 3번째 30-30클럽 가입뿐 115타점 101홈런까지 기록하며 커리어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현대의 창단 두 번째 한국시리즈(KS) 우승도 견인했다. 거칠 것 없던 박재홍의 야구 인생에도 시련은 있었다. 2001시즌부터 잔 부상에 시달리며 앞선 5시즌(1996~2000)보다 장타력이 떨어졌다. 2003시즌을 앞두고는 KIA로 트레이드됐다. 팀 쇄신을 노린 현대는 현금 10억원과 유망주 정성훈을 받고 간판선수를 넘겼다. 현대팬은 구단의 결정에 비난을 쏟아냈다. 박재홍은 KIA에서 자존심을 구겼다. 2003시즌은 타율 0.301 19홈런을 기록하며 나쁘지 않은 성적을 남겼지만, 2004시즌은 타율 0.253 7홈런에 그쳤다. 1군 등록일수를 채우지 못해 자유계약선수(FA) 자격 취득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다시 일어섰다. 2004년 12월, 투수 김희걸과 1대1 트레이드로 SK 와이번스 유니폼을 입은 그는 2005시즌 타율 0.304 18홈런을 기록하며 재기했다. 이후 4시즌(2006~2009) 연속 두 자릿수 홈런을 쳐내며 SK가 강팀으로 자리 잡는 데 기여했다. FA 계약도 두 차례 따냈다. 박재홍은 2009년 4월 23일 롯데전에서 도루를 추가하며 프로야구 최초로 250홈런-250도루에 가입했다. 하지만 300홈런-300도루는 해내지 못했다. 2012년 10월 3일 LG전에서 통산 300번째 홈런을 때려냈지만, 도루는 267개에서 멈췄다. 박재홍은 은퇴를 결정하고 해설위원으로 새 출발 하며 "남은 33개의 도루는 해설가로서 시청자 마음을 훔치겠다"라고 했다. 2013년부터 지금까지 방송사 해설위원으로 현장을 누비고 있다. 선수 시절 박재홍과 한솥밥을 먹은 정경배 SSG 랜더스 코치는 "30-30클럽에 3번씩 가입할 선수가 앞으로 몇 명이나 나올 수 있을까. 그가 남긴 기록의 가치는 정말 크다"라고 했다. 실제로 2000년 박재홍 이후 이 기록을 해낸 국내 타자는 나오지 않았다. 안희수 기자 an.heesoo@joongang.co.kr 2022.01.10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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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팔' 이상군, 이글스를 이끌게 되다

올 잔여 시즌 한화 지휘봉을 잡는 이상군(55) 감독대행은 30년 가까이 '이글스맨'이다.그는 청주 우암초-청주중-북일고-한양대를 졸업하고 1986년 빙그레 창단 멤버로 입단했다. 2001년 은퇴 때까지 이글스에서만 뛰었다.이상군 감독대행은 첫 시즌부터 팀의 에이스를 맡았다. 1986년 12승17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2.63을 기록했다. 그해 KBO 리그 최다 선발 등판(30회) 투수였다. 이듬해는 18승11패 2세이브 평균자책점 2.55로 개인 통산 한 시즌 최다승에, 리그 최다 이닝(246⅔이닝)을 기록했다. 1986~1989년까지 4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달성했다.그는 현역 시절 '고무팔'로 불렸다. 자주 등판해 긴 이닝을 던졌기 때문이다. 기록상으로 증명된다. 1986년과 1987년 각각 완투 19회, 24회로 리그에서 가장 많았다. 1988년에는 세이브 1위(16개)를 차지했다. 이 감독대행은 1996시즌 종료 후 현역에서 은퇴했다. 그리고 1997~1998년 코치 연수를 떠났다. 하지만 1999시즌 현역 복귀해 플레잉코치를 겸하며 한화의 한국시리즈 우승에 공헌했다. 이 감독대행은 프로 15번째 시즌인 2000년 4월 30일 잠실 LG전에서 개인 통산 100승을 달성했다. KBO 리그 역대 13번째 기록의 주인공이다. 특히 개인 통산 100승 시점을 기준으로 역대 최고령(38세 9일) 100승 달성 투수로 여전히 남아 있다. 그의 마지막 승리 경기였다. 그는 이듬해인 2001년 현역에서 은퇴했다. 개인 통산 성적은 총 320경기에서 1411⅔이닝을 던져 100승77패 30세이브 평균자책점 3.30을 기록했다.이 감독대행은 은퇴 후 한화에서 코치 생활을 시작해 2004~2005년 LG 투수코치로도 몸담았다. 다시 한화로 돌아온 그는 재활군 코치-1군 투수코치 등을 거쳐 스카우트, 운영팀장 등 현장과 프런트의 주요 보직을 두루 거쳤다. 이형석 기자 '새 감독 없다' 한화, 이상군 대행 체제 확정…왜? '고무팔' 이상군, 이글스를 이끌게 되다 50경기 이상 지휘한 감독대행, 5할 승률 이상은 5명뿐'권위의 상징' 대전 감독실, 시즌 내내 비어진다 2017.06.1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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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시대’ 맞이하는 2014 프로야구 예상 판도

중국의 전 역사를 통틀어 가장 혼란스러웠던 시기를 고르라면 단연 춘추전국시대다. 올 시즌 프로야구는 춘추전국시대에 비유된다. 최근 몇년간 절대 4강 세력으로 불렸던 팀들의 전력이 약화된 반면, 4강 문턱에 오르지도 못해 약자로 분류됐던 팀들의 전력 보강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야구전문가들은 '1등을 꼽기도 어렵지만, 꼴등을 말하기 더 어려운 시즌'이라고 평한다.절대적 강자도, 뚜렷한 약자도 없다올 시즌 절대적 강자도, 뚜렷한 약자도 없는 9개 팀의 맞대결이 예고되어 있다. 최근 3년(2011~2013년) 동안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 통합우승을 일궈내며 리그 절대 강자로 군림했던 삼성은 이번 스토브리그에서 마무리 오승환을 잃었다. '삼성 전력의 반을 차지한다'고까지 했던 오승환의 이탈은 삼성에는 뼈아프다. 여기에 새 외국인 투수 마틴의 부상(5월 초 복귀예상)까지 겹치면서 삼성은 새로운 마운드 구상의 걱정을 안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가을의 기적'을 일으켰던 두산은 이번 비시즌 동안 FA(프리에이전트) 3명(이하 NC 이종욱, 손시헌, 롯데 최준석)과 임재철, 김선우(이상 LG)등 베테랑의 대거 이탈로 몸살을 앓았다. 팀 주전급 선수들의 나이대가 젊어지면서 활력이 생겼다고는 하나, 올 시즌 경험에서 오는 부재를 어떻게 해소할 지가 관건이다. 새 사령탑 송일수 감독과 선수들의 호흡도 변수다. 넥센의 화력은 여전히 강하지만, 마운드의 붙어있는 물음표는 해소되지 않은 상황이다. 나이트와 밴헤켄이 원투펀치로 버티고있고, 마무리 손승락이 건재하다지만, 나머지 선수들의 능력에 확신이 없다. '언젠가는 터져주길 바라는 유망주'들이 즐비하다. 마운드 걱정은 LG도 마찬가지다. 에이스노릇을 했던 외국인 투수 리즈의 부상 이탈로 고민에 빠졌다. 반면 지난해 최하위를 차지했던 한화는 FA 이용규와 정근우를 영입하고, 대대적인 체질개선으로 꼴찌 탈출의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 김응용 한화 감독의 '경쟁을 통한 상생'은 선수들에게 확실한 동기부여가 되고 있다. 류중일 삼성 감독과 송일수 두산 감독은 올 시즌 NC를 가장 유력한 4강 후보로 꼽았다. 이혜천과 이종욱, 손시헌, 박명환 등 베테랑들의 영입으로 탄탄한 전력을 만들었다는 점과 외국인 투수 3명을 보유했다는 것이 그 이유다. 특히 지난해 시즌 말에 무서운 기세로 다른 팀들을 위협했다는 점에서 NC의 상승세를 주목할 만하다. 에이스 윤석민(볼티모어)을 잃은 KIA와 국가대표 2루수 정근우(한화)를 잡지 못한 SK도 순위도 쉽사리 점칠 수가 없다. 아직 뚜껑은 열리지 않았다.이쯤되면 지난 1996시즌이 생각난다. 당시 시즌을 앞두고 많은 야구 전문가들이 '리그 우승 팀과 꼴찌 팀을 지목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럴만 한 것이 만년 꼴찌를 일삼았던 쌍방울이 김성근 감독(현 고양 원더스 감독)으로 사령탑을 교체했고, 전년도 7위 태평양도 현대로 팀이 바뀐 후 김재박 감독을 영입해 체질 개선에 나섰다. 특히 현대는 박재홍(현 MBC 스포츠 플러스 해설위원)을 영입하면서 화력 강화에도 힘을 썼다. 전년도 1~3위 팀인 OB(두산의 전신)와 롯데, LG는 무난하게 4강에 갈 것이라는 점에서 꼴찌 후보에서 제외되긴 했지만, 누구 하나 확실한 우승팀으로 분리되진 않았다.해태는 에이스 선동열(현 KIA 감독)의 일본 진출과 김성한(현 한화 코치)의 은퇴로 전력이 약화됐다는 평가였다. 하지만, 막상 시즌 뚜껑을 열고 보니 순위 싸움에서 열세라고 봤던 해태가 분위기를 딛고 그 해 우승팀이 됐다. 반면, 무난히 4강에 진출 할 것으로 보였던 OB는 꼴찌의 오명을 썼다. 허구연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남들이 모두 인정할 만한 강자도, 약자도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올 시즌은 이전과 다른 순위 싸움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김유정 기자 kyj7658@joongang.co.kr 2014.03.0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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